명실상부와 명실상수

名實相符와 名實相須

명실상부라는 것은 예부터 서로의 약속을 뒷날 확인하기 위해서 쓰이게 된 말이다. 원래는 여합부절(如合符切)이 그 연원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서로 헤어져야 할 불가피한 처지에서 뒷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서로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꼭 같이 생긴 쌍가락지(指環)를 하나씩 나누어서 보관한다든가, 약속된 글자를 반으로 잘라서 보관하거나, 작은 그릇조각을 반으로 쪼개서 한쪽식 보관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쓰이곤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어린이는 자랐고 어른은 늙어서 서로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을 때, 또는 전쟁 기타 이유로서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에 부표(符票)의 조각을 서로 맞추어보면 빈틈없이 잘 맞는다. 그것 이상 정확한 것이 없다 하여 이를 여합부절(如合符切)이라한다.

따라서 명실상부(名實相符)는 이미 알려진 그의 성가(聲價)와 그의 현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소문은 무성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하면, 사실은 놀라울 만큼 뛰어나지만 사실만큼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실이상으로 알려진 경우에는 허명 허실 허세 허풍(虛名 虛實 虛勢 虛風)등을 의미하는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한다. 그런 것을 조심하자는 뜻에서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같지 못하다하여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한다. 과유불급은 겸허함과 성실함을 전제로 해서 처신하기 위한 도덕적인 의식이 있음을 의미하지만 허장성세는 그러한 의시이 희박할 수록 자주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자기 PR시대라 하여 자신을 스스로 극찬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이 비록 선전(propaganda)이라 해도 허위요소가 너무 많이 차지하게 되면 도리어 사회적으로 해악을 가하기 쉽기 때문에 이는 사회도의상 삼가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간에는 사회일각에서 목청을 높임으로서 허세를 들어내고, 완력을 과시하여 위세를 떨치며, 재력을 앞세워 권위를 조작하려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권력을 빙자하여 배후의 힘을 암시하려는 풍조도 없지 않아있다. 그것은 처음에서 끝까지 모두가 불시(不實)한 것이며 아울러 사술(詐術)과 조무(造誣)의 요인을 가미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난세와 난국의 병인(病因)은 거의가 그와 같은 사회적 요인으로부터 배태(胚胎)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논어(論語)에서는 명실상수(名實相須)라는 구절을 주제로 삼아 역대 명현들이 많은 토론을 거듭해왔음을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수(須)는 수(需)와 같은 뜻으로서 필수(必須 또는 必需)라는 말이다. 즉 빼놓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으로 명실상수하기 위해서는 명필요실(名必要實)하고 실필요명(實必要名)해야 한다고 하였다.

명성(名聲)과 성가(聲價)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실상과 실력(實相 實力)이 뒤따라야 하고, 실상과 실력은 그 이상으로 명성을 과대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명실상수의 역면(逆面)은 며실사괴(名實相乖)일뿐이기 때문이다.

근간 야기되고 있는 사회적 사건의 대부분은 명실상괴의 현상으로 들어나 있다. 일부에서는 그 명실상괴의 모순을 호도(糊塗)하기 위하여 억지투정을 부리곤 한다. 우리 사회 속에 언제부터인가 깊이 만연되고 있다.

억지투정이란 타협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궤변을 말한다. 궤변을 궤변이라 믿는 것은 성실한 것이지만, 궤변을 정당한 것이라고 사족(蛇足)을 붙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궤변일 뿐, 어떤 경우에도 정론(正論)으로 둔갑할 수는 없다.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힘과 다수로서 미러 부치면 된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억지이며 논리의 기형(畸形)일 수밖에 없다. 기형적 논리로서 사회적 대세를 관장하려는 그 생각부터가 비 민주주의적일 뿐 아니라 역사의 용납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재언의 여지가 없다.

두 번 다시 언급하기 싫거니와 세월호 사건이후 100일이 훨씬 넘도록 어불성설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이슈로 시간을 낭비해왔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한 것은 어느 해학자의 말과 같이 법사위원회에 참가하여 표결권을 달라고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라고 말한다.

학교교육에 있어서는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必須科目)이 있고, 경제경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자원(必需資源)이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상식적인 국민의 수준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必須德目)이 있는 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명실상부한 신뢰설정을 위해 사회 도의적

인프라 구축이 요구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명실상수(名實相殊)하게도 거짓과 위선으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해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경고가 끊기지 않고 있다.왜냐하면 우리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공사회는 어디까지나 신의성실에 어긋나지 않는 이른바 민주시민다운 품위유지의 격률(格律)이 바로 잡혀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과제의 실천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의 제1차적 책무임을 자주 되뇌어야 할 것이다.

재단법인 풍석문화재단 김유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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