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

和而不同하라 同而不和해서야
捨己從人하라 導己不正해서야

사람마다 자기 철학(哲學)이 있고 자기 처신법(處身法)이 있으며 저 나름의 사물관(事物觀)이 있다. 이런 것을 통 털어서 인생관 또는 사회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것은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일례를 들어서 말한다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대의(大義) 앞에서는 자기의 생각보다는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위민보국(爲民報國)이라는, 보다 큰 몫을 한다는 뜻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나라의 안전(安全)과 백성들의 안정(安定)을 위한 대의 앞에서는 정당(政黨)을 달리하고 있다는 입장을 벗어나서 충성심(忠誠心)으로 하나가 돼야한다는 뜻이다. 안보와 민생을 위한 명제(命題) 앞에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이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같은 정치인이라는 동일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화합하지 못하는, 이른바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졸태(拙態)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요즈음 정가 일우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지나칠 만큼 동이불화현상이 심한 것 같다. 일례를 든다면 2014년 7월 14일에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는 당수 후보자로 나선 사람들 모두가 거의 예외 없이 외치기를,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신명을 바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회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다. 그리고 다음 날 부터 새로운 당수를 앞세운 일정이 시작 되었다.

첫날부터 경악스러운 모습이 국민들의 눈을 의심케 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을 느끼게 했다. 최후의승자는 되지 못했지만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일부 인사의 모습이 보이지 안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칭병(稱病)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한 현상을 사기종인(捨己從人)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이라 한다. 일직이 이퇴계 선생께서 뼈에 사무칠 만큼 지적했던 말이 바로 사기종인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나보다 좋은 의견을 지니거나 능력이 뛰어난 승기자(勝己者)가 있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그를 따를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종래의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아질 수 없다고 경고한바 있다. 이는 500여 년 전에 나온 경세통언(警世通言)이었다. 그 지적은 아직도 우리에게는 생생한 교훈으로 생기(生氣)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가 일우에서는 아예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칠 길이 없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이루겠다는 것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솔선수범하는 실천으로만 가능할 뿐이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대통령이 당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지극히 근소한 표 차이로 패배한바 있었다. 그 때 흔쾌히 승복했다. 승자 못지않게 국민적인 환영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간 중 묵묵히 대의에 따른 자기 위상을 의연히 유지했다.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칭찬의 호응을 많이 받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한 길은 바로 그와 같은 정신 계승 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현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대하여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한다. 자칭 민주화 투사였다고 외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식자층의 견해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적 시민적 행동양식의 민주화는 아주 미숙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태가 사회 각 분야에서 너무도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귀띔해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기종인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도기부정(導己不正)하는 습벽(習癖)이 강하기 때문이다. 도기부정이라는 것은 진시황 시대의 간신이었던 조고(趙高)에서부터 유래한 말이다. 이른바 말을 가리켜 사슴이라 하면 사람들은 말인줄 알면서도 말을 가리켜 사슴이라 했다는 이른바 지마위녹,지녹위마(指馬謂鹿.指鹿謂馬)가 그것이다. 따라서 도기부정이라는 것은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옳지 않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의 정치문화가 발전하고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이른바 도기부정에 앞서 사기종인할 줄 알아야 하고, 동이불화하는 소인배 노릇하지 말고 부동이화 하는 기풍을 진작해가는 선비다운 기질과 의지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속이는 기기자(欺己者)에게는 정기(正氣)가 없고, 국민을 속이는 기민자(欺民者)에게는 신의(信義)가 없으며, 국가를 속이는 (欺國者)에게는 충혼(忠魂)이 없기 때문이다.

정기와 신의와 충혼이 결핍되어 있으면 그러한 사람들은 민주의의의 원리원칙을 원천적으로 받아드리지 못한다.

신음어(呻吟語)에서 이르기를, 거짓을 꾸며대는 것보다 더 큰 해악(害惡)은 없다고 했다(言語之惡 莫大於造誣).

거짓으로 표현하는 그러한 언동은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와는 병립할 수 없다. 즉 용납될 수 없는 행동양식인 줄도 모르고 민주주의를 한다느니, 했다느니 하고 자신을 내새운다면 그것은 넌센스에 지나지 않는다.

시의 고금을 막론하고 조무지어(造誣之語)가 정상적으로 통하는 세상은 없었다. 전국시대에 유세가(遊說家)이며 달변가로 알려진 소진(蘇秦)은 합종책(合縱策)을 통하여 무려 6개국을 설득했을 뿐 아니라 6개국의 재상 노릇을 하면서 10여 년간 부귀영화도 누렸지만 결국에는 장의(張儀)의 연형책(連衡策)에 의하여 합종책이 깨지고 거짓이 들통 나자 제(齊)나라에서 살해당하는 비운을 마지하고 말았으며, 중국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던 진시황도 3대를 이어가지 못하고 10여 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속임수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아픔을 남겨주느냐 하는 것은 재판관의 판결보다도 더 냉혹한 천벌로 다스려진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재단법인 풍석문화재단 김유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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