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림없는 짓 하지 말라

枉己正人 辱己正世

맹자 만장편(孟子 萬章篇)에서 보면 전국시대의 명 논객으로서 통세경언(通世警言)을 많이 남긴바 있는 맹자의 글 가운데 왕기정인 욕기정세(枉己正人 辱己正世)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바르게 살아가지 않는 자가 다른 사람을 바르게 살라하고. 세상에서 지탄(指彈)을 받고 있는 자가 온 세상을 바르게 세우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무리들의 망동을 지적한 말이다. 속담의 예와 같이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속언(俗諺)처럼 표현한다면 “어림없는 짓 하지 말라”는 뜻이다.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면 삼황오제(三皇五帝)시대는 왕도(王道)정치가 이루어졌던 시대를 말하며, 춘추시대는 패도(覇道)정치가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전국시대는 책도위주(策道爲主)의 시대라고 한다. 왕도정치는 덕화력(德化力)으로써 인정(仁政)을 베풀었다 하여 그 시대를 이덕시인(以德施仁)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리고 춘추시대는 이상적 정치목표는 왕도정치(王道政治)임이 분명하지만 덕화력보다는 물리적 역량(物理的力量:武力)으로 통치기반을 먼저 확보할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이를 패도(覇道)라고 한다. 패도라는 것은 상대를 제패(制覇)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춘추시대의 정치풍토였다. 따라서 춘추시대를 오패왕(五覇王)의 시대라 한다, 다른 말로는 이력가인(以力假仁)의 시대라고도 한다. 힘으로써 인정(仁政)의 길을 빌린다는 뜻이다.

왜 그랬느냐하면 주천자(周天子)를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소명(召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소명을 이어갈 것인가 하는 경쟁이 벌어졌으니 그것이 곤 패권다툼이었다. 당시에 12개의 열국(列國)이 있었다(魯 衛 晉 鄭 曹 蔡 燕 齊 宋 秦 楚 吳). 그 중에서 齊桓公 晉文公 楚莊王 秦穆公 宋襄公의 순서로 패주(覇主)가 되었다.

그런가하면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칠웅상쟁(七雄相爭)의 시대라고도 한다. 서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패권다툼이라는 양상은 춘추시대나 전국시대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서로 다른 점이 있었다. 춘추시대는 5명의 패왕이 동시에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일열종대형(一列縱隊形)으로 패주시대를 순차적으로 열어갔다는 것이 전국시대와 다르다.

전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천자(周天子)를 대신한다는 풍토가 사라지고 서로 패권을 장악할 강국이 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의 열강은 7개국을 꼽는다. 韓 魏 趙 齊 晉 楚 燕이 그것이다. 그 7개국이 서로 선두경쟁을 벌렸기 때문에 이른바 7웅상쟁(七雄相爭)의 형태는 일열횡대형(一列橫隊形)의 경쟁이었다. 그와 같은 상황으로 정세가 바뀌자 서로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책략(策略)도 불사하는 시대적 상황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국시대를 가리켜 책도(策道)의 시대라고도 한다. 따라서 책도는 하나에서 열까지 승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모략과 기만과 술수의 동원이 극치에 달하게 되었다. 그것이 곧 이모구승(以謀求勝)인 것이다. 즉 이기고 보자는 것이다. 아마도 전국시대의 무원칙 경쟁의 여파(餘波)는 오늘날로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싶다. 무원칙 경쟁의 본질적 병폐는 법이나 조약이나 약속에 앞서서 존중돼야할 도덕성(道德性)에 대한 무감각상태를 말한다. 무원칙하기 때문에 무질서하고, 무질서하기 때문에 자유는 방종으로 변질되고, 책임과 의무의식은 궤변으로 봉합(縫合)되어버리는 흐름속에서 무법과 비리와 부정과 부패가 거듭 심화확대(深化擴大)되어 간 것이 아닌가싶다. 맹자의 이른바 “어림없는 짓 하지 말라”는 경고는 바로 이런 현상의 만연화(蔓延化)를 막아야 한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한다.

맹자에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욕기는 심억왕기(辱己 甚於枉己)하고 정세는 난어정인(正世 難於正人)이라고 말이다. 즉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이고, 세상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뜻이다.

상도(常道)를 벗어난 사람이 백성을 바르게 이끌어갈 수 없고, 무도(無道)한 사람이 세상을 바로 잡아갈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왕기자인 줄 모르고 자신이 욕기자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류들은 자신이 다반사처럼 상도(常道)를 이탈하고, 무도(無道)함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누이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소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말 세 번 연달아하면 누구나 속일 수 있다는 이른바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사술(詐術)과 파브로프의 조건반사설(條件反射說)등을 즐겨 쓰려는 생각은 일찍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은 첫째는 기만(欺瞞)이요, 둘째는 현혹(眩惑)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기만과 현혹의 수단으로서 치인치세(治人治世)의 길을 열어갈 수는 없다. 잃어버린 36년, 잃어버린 10년 등의 용어가 다시는 출현할 수 없게 하기 위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재부터는 경제규모나 수출수준이나 기술의 역량 및 원조국으로서 그 폭을 넓혀가는 세계 상위권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와 같은 국격(國格)에 걸 맞는 선진적 민주시민다운 생활행태를 갖추어가야 할 것이다.

몽매한 군중을 선동수법으로 유도하거나 정보의 왜곡을 통하여 사회적 일부계층을 오류의 함정으로 빠트려서 자신들의 숨겨온 의도를 관철하려는 요사(妖邪)한 방식의 처세술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제19대 국회의 국정감사결과에 대한 대부분의 언론기관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는 “사무 국정감사(四無 國政監査)”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무성의, 무효율, 무품위, 무성과(無誠意 無效率 無品位 無成果)라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합법을 가장한 국민기만이요, 민의멸시의 망행(妄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회일각에서는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이른바 상상을 초월하는 “어림없는 짓”을 범하는 망동이 튀어나오고 있다. 몇 가지의 예를 든다면 첫째는 정신 상태를 의심케 하는 모 국회의원은 원내에서 발언을 통하여 현임 대통령의 임기가 과반을 훨씬 지나간 지금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였다”운운하여 여야 정계는 물론, 그 발언자에 대한 개탄스럽다는 실망의 사회적 여론이 확산되어가고 있다.

둘째는 근년에 보기 드문 한발(旱魃)로 인하여 삼남지방에서는 일용 식수마저 어려운 형편이라 한다. 한발극복 대책의 일환으로 4대강의 물을 이용하자는 방안이 제시되자, 야당에서는 이것이 4대강 개발계획의 추가적 추진이 아니냐 하는 뜻으로 반대한다는 보도가 전해지고 있다. “어림없는 짓”을 해도 이토록 심할 수가 있을까? 국회의원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들에 대간 욕기정세(辱己正世)라는 위선(僞善)을 지탄하는 원망과 욕설이 높아져가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셋째는 전교조 교사가 동영상을 만들어 그것을 교재 삼아 수업을 하던 중,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과 와전이 심하다고 여긴 학생이 그 동영상 내용을 핸드폰으로 촬영하여 공개하였다. 그 학생의 용기 있는 태도는 칭찬할 만하다. 전교조 및 동 교사에 대한 크나큰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은 판별력은 그 교사의 경우, 학생에게 도리어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다.

넷째는 그간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역사교과서 내용의 터무니없는 왜곡부문에 대해 수정 편간하기 위하여 국정화(國定化)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사회적 여론 수렴과정과 정부의 정책방향으로 그 가닥이 잡혀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대학의 교수 중 국사전공자라는 그들이 여기에 반기를 들고 나와 집필거부 한다는 집단태도를 언론에 비추고 있다. 참으로 불상하게

여겨진다. 국사는 일개대학의 교사(校史)와 같은 것이 아니며, 특정 지역사회의 지방지 (地方誌)를 편찬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집필진으로 위촉했을 리도 없다.

그 같은 자만과 오기의 표현은 사회적 지위를 지닌 사람으로서는 최대금기사항이라는 논어(論語)의 구절이 떠오른다. 의. 필. 고. 아.(意必固我)가 그것이다. 즉 숨겨진 의도, 내가 꼭 해야 된다는 속셈. 사회적 적응성이 없는 옹고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려는 자과심(自誇心)을 말한다.

그리고 이퇴계(李退溪)선생께서는 당시 성균관 유생들에게 경고하기를, 우리나라 선비 또는 지식인들이 사기종인(舍己從人)할 줄 모른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아져갈 수 없다고 했다. 사기종인이란 나의 고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좋은 의견을 받아드릴 줄 알라는 뜻이다. 이러한 경언(警言)은 우리가 민주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기초덕목임에 틀림이 없다.

그와 같은 사실을 중심으로 하여 냉엄한 선거심판(選擧審判)을 단행할 수 있는 유권자 층의 판단력이 아쉽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 전문가에 의하여 심도 있게 이미 축적되어 있는 많은 정보가치를 보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성찰 한다는 지식인다운 소양과 덕성을 먼저 함양해 가도록 노력 하는 풍토의 성숙화(成熟化)만이 우리나라의 사회적 미래와 미래세대에게 더욱 밝은 길을 열어주는 첨경(捷徑)이 아닐까 한다.

왕기 및 욕기(枉己 辱己)를 범하고 있는 주범들에게 보내는 경고가 다름 아닌 “어림없는 짓 하지 말라”는 왕기정인 욕기정세(枉己正人 辱己正世)의 망상(妄想)을 버리라는 직격탄(直擊彈)인 것이다. 되도록이면 오래 오래 기억하면서 적기(適期)에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국민적 심판관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따라서 국민주권이 실종되는 복철(覆轍)을 되밟는 어리석은 짓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으며 결코 행해져서도 안될 것이다. 만약 그런 과오 범한다면 그들 자신이 왕기 및 욕기자(枉己,辱己者)가 되기 때문이다.

재단법인 풍석문화재단 김유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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