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는 무엇이며 僞는 무엇인가

一本者는 理也요. 二本者는 僞也라

平面에는 중심점이 하나이고, 立體에는 구심점이 하나다. 자동차의 네 바퀴는 중심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잘 굴러가고, 팽이는 구심점이 잘 잡혀있기 때문에 안정된 회전을 할 수 있다.
역학(易學)에서도 中과 正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中은 중심을 잡아주기에 정상과 균형이 유지되고 안정도 높은 位相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中庸에서 천명하고 있는 執中貫一의 개념도, 建中建極의 개념도 모두 中正을 의미한다.
중심이 잡힌 사람이라야 정직할 수 있고, 정직한 사람이라야 중용의 道를 지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으로 제시한 바와 같이 一本이란 正과 中을 의미한다. 그리고 一은 理를 뜻하며 本은 極을 의미한다.

君子는 每事에 莫不用其極이라 했다. 즉 군자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최선(極)을 다하지 않을 때가 없다는 뜻이다.
執中貫一과 建中建極은 모든 중심은 一極으로 통한다는 것이니 이것이 다름 아닌 최상의 진리로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道有一眞이요--(無不正)
事有一理이며--(無不理)
物有一則이기 때문이다--(炎上潤下의 例).
道에는 眞理가 하나이며,
事에는 理致가 하나이고,
物에는 物이 존재하기 위한 法則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道理는 진리에 바탕을 두고 定義되어야 하며,
事理는 順理에 따라 풀어가야 하고,
物理는 법칙에 따라 그 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을 有物有則이라고 한다.
詩經에 이르기를 人有道하고 有物有則이라 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그 지능이 뛰어나지만 道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하여 人有道라 한 것이다. 인간이 모든 사물의 법칙을 터득할 수 있을 때 사물 用法의 適正性을 깨달을 수 있고, 응용할 수 있으며, 아울러 適材適所에 관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시경에서 말하는 유물유칙의 원리를 터득해야할 主體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人有道라 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對物之道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用物守則의 道가 있어야 한다.
人有道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한다면,
對人之道는 眞理에 근거하고(道有一眞),
對事之道는 事理에 근거하며(事有一理)
對物之道는 法則에 근거해야 한다(有物有則).
眞理와 事理와 法則에 어긋나는 것은 不正이며 非理이며 反則이다.

우리나라 사회적 부정과 비리와 반칙이 많다는 것은 OECD 국가 중 청렴도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잘 말해주고 있다.
날마다 방송에 거의 빠지지 않는 보도중의 한 가지가 부정과 비리사건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면 사회적 부정척결을 위한 국민적 용단을 내릴 때도 지금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더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부정과 비리와 반칙은 제목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二本者는 僞라는 뜻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僞善者는 正言과 直語를 피하고,
僞裝者는 常識과 常道를 피하며,
僞法者는 原則과 法則을 피한다.
僞善者가 감언과 이설을 좋아하고,
僞裝者가 허세와 사술을 좋아하며,
僞法者가 변칙과 변술을 좋아하는 理由는 그 모두가 欺瞞術이라는 極點으로 相通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예방하자는 에부터의 노력이 있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五正名이다. 五正名은,
첫째 規요. 둘째 矩요. 셋째 繩이요. 넷째 準이요. 다섯째 權이다.
規는 角尺이요, 矩는 圓尺이요, 繩은 直尺이요, 準은 平尺이요, 權은 衡尺이다.
그 5가지 尺度는 모두가 온갖 부정과 비리의 極點으로 통하는 欺瞞術로부터 벗어나자는데 그 뜻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음성적인 부정 비리의 毒素는 衡尺에 있다.
衡은 저울대를 말하며, 權은 저울추를 말한다. 저울대는 평형을 잡아주는 기능을 하고, 저울추는 무개의 輕重을 척도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權이라는 저울추가 제멋대로 오가면서 저울대의 평형을 조작한다면 물건의 무개는 올바르게 측정될 수 없다.

저울추는 權자로 통한다. 즉 權力을 의미한다. 勸力으로서 저울추의 위치를 조작하거나 눈속임을 한다면 물건의 소유주는 언제나 속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검은 손에 의한 착취인 것이다.

公職者는 나름대로의 裁量權과 委任專決權을 가지고 있다. 즉 저울추를 지나고 있는 셈이다. 저울추의 눈금조작을 통하여 저울대를 늘 平衡으로 마추어 놓으면 물건의 경중을 마음대로 조작하면서 대중적인 行政需要顧客을 속일 수 있고 음성수입을 올릴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勸力型 不正이요 非理인 것이다. 五正名은 분명히 一本者이지만 저울추(權)에 의한 衡尺非理는 누가 막아야 할 것인가? 저울의 주인만이 숨기고 있는 詐欺的 妙術을 척결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 부정 비리는 국민적 차원에서 함께해야할 척결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苦毒이라 한다. 입에 쓴 약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뇌물을 일컬어 甘毒이라 한다. 입맛을 돋구는 사탕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사탕 속에는 독이 들어 있다. 뇌물이란 거의 예외 없이 독소가 들어있는 사탕과 같다. 장미 꽃 뒤에 숨겨진 가시처럼 감독은 반드시 들통 나게 되어 있다. 그간 숨겨진 부정 비리 반칙 등의 부당 요인들이 들어나고 있는 것이 부정 비리 보도라는 것을 언제나 눈여겨 봐 주기 바란다.

재단법인 풍석문화재단 김유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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