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이야기1

새우접시정조지 요리를 복원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막상 요리는 원전에 충실하게 했는데 담을 그릇이 영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요리 하나 하나 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간 듯 정성을 들이다 보니 아무 그릇이나 담고 싶지가 않았다. 벌어져 있는 시간의 간격만큼 상상하고 머리 속으로 떠올려 보는 작업이 필수다.  “어떤 그릇에 담으면 좋을까, 어떤 그릇에 담았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르는 허름한 생활용품 가게가 있다입구에 쌓여 있는 그릇더미 들이 각자 시간의 더께를 뒤집어 쓰고 있다.  오랫동안 그릇의 구실을 잃고 어두운 찬장 속에 있다 갑자기 햇볕 속으로 나온 그릇들이다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일제시대 그릇까지 같은 쟁반이나 받침대 위에 나와있다.  그릇들을 보고 있노라면 거꾸로 이 그릇에는 이런 요리를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작정 그 형태가 좋아 빠져 들기도 한다.

   무더기 무더기 모여있는게 아무래도 세트로 나오다보니 그릇들의 특징이 더 잘 드러난다.  제일 먼저 눈이 가는게 70년대 생활속에서 쓰던 반상기들이다.  그릇에 문양들이 강하고 강한 톤으로 꽃이나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져 있다.  접시류에는 대부분 받침이 둘러져 있고 가장자리도 판판하게 올라와 있어 은근히 장식성이 강하다.  일제 시대 새우 접시도 나와 있는데 푸른 테투리에 연두빛깔 바탕 푸른 빛의 사실적으로 그린 새우가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단순하고 강렬해서 요리를 압도하지 않나 싶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새우 그림이 자꾸 마음을 끈다.

 

 부레옥잠  안으로 들어가보니 흰 바탕에 복자가 넉넉하게 써진 밥 그릇이 전구 빛을 반사하고 있다.  조금씩 다르면서 비슷한 그릇들이 다정해 보인다.  은은하기도 하고 소박해 보여 보라색 문양이 있는 탕그릇과 깨끗한 백자 밥그릇 탕그릇 하나씩을 골라봤다.  윗 부분이 풍성하게 부풀고 밑이 살짝 급하게 기울어 긴장감을 주는 작은 투가리 하나도 집었다.  나중에 하얀 곡주 종류를 담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게 앞 쪽 돌확에 주인 아주머니가 기르는 부레옥잠과 개구리 밥이 싱그럽다. 손 때 묻은 그릇들과 수수한 녹색 식물들이 어우러져 작은 화원을 만들고 있다.  저녁이라 시골의 까만 모기떼들이 극성이다.  어두워지는 가게를 뒤로 하고 소중한 그릇들을 조심스레 싸서 안고 돌아왔다.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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