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도 (鍾鼎圖)

종정도임원십육지 정조지(鼎俎志)의 정()은 발이 3개 달리고 양 쪽에 귀가 있는 솥을 뜻하는 글자로 당시 동물 문양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음식을 삶고 끓여서 익히는 기구를 말한다. ()는 제향에 쓰이는 희생물을 담는 제기로서 도마의 뜻으로도 쓰인다. 정조지의 한자 뜻을 풀이한 말이다.

  어린시절 추위와 외풍을 막기 위해 한옥 장지문 앞에 어머니께서 병풍을 둘러 쳐 주셨다. 거기에는 짙은 남색 비단위에 녹색과 노랑으로 발이 셋 달리고 귀가 둘 달린 향로같은 제기가 수 놓아 져 있었다. 중간에 한자도 수놓아져 있어 붓글씨나 화조도 같은 자수 병풍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제사용 병풍 같기도 하고 녹색이 주는 존귀한 느낌 때문에 여러 번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자수 관련 책자를 보다 종정도(鐘鼎圖)를 보게 됐다. 정조지의 정(), 어린시절 봤던 병풍의 제기가 무엇인지 의문이 풀렸다. 종정도(鐘鼎圖)란 중국 상고 시대에 제작된 청동제 기물 중에서 종과 솥 두가지를 배열한 병풍으로 조선시대 후기에 귀족층의 침실용 또는 서재용으로 제작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종은 솥과 함께 국가의 제사와 행사에 쓰인 중요한 의식구 였다고 한다. 종은 주술적 힘을 가졌다고 해서 기우나 풍작을 빌 때 울렸고 솥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대표적인 제기로서 그 크기는 국위를 상징했다고 한다

  백수전도(白壽全圖)는 고대 중국에서 제작된 각종의 의례용 기물을 배열한 것으로 한 대(漢代)의 질그릇(), 주대(周代)의 솥(, 노구솥), 하대(夏代)의 솥()이 그 예다. 오래된 이 기물들이 장수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표로 여겨져 문양화 됐고 한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여주인이 가장보다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이사 짐이 들어오기전 전날 저녁 안방 한가운데 솥단지를 가져다 놓은 일이다. 솥이 가진 상징성과 새집에서도 잘먹고 살게 해달라는 소박한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이처럼 정조지의 ()은 누구나 굶지 않고 배부르고 따뜻하게 먹고 살게 해주고픈 기원이 담긴 요리책이지 않을까 싶다.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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