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기의 과학

고기를 굽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미국식 스테이크처럼 육질이 느껴지게 두텁게 썰어 별다른 곁들이없이 고기 자체의 풍미를 즐기게 굽는 법이 하나있다.  둘째는 고기를 미리 전처리하고 도구를 사용하여 굽는 법에서도 다른 요소를 가미하는 방법이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겉표면을 일단 고온에서 지져 막을 만든 다음 육즙이 빠져 나오지 않게 하라고 흔히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렇게 해보면 생각과는 달리 겉이 너무 뻣뻣해지고 팬에서 내렸을 때 남은 잔열로 지나치게 수분이 증발해 그야말로 미라를 씹는 것처럼 맛이 없는 경우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마른 미라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수분이 지저분하게 흘러 식욕을 더 떨어뜨리기도 한다. 고기 굽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고기굽기처음부터 센불로 굽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고기를 구우면 고기 육즙이 급격하게 기화 되지 않아 고기 내부에 머물러 부드럽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지방은 타지 않되 수분이 급격하게 증발되지 않아야 고기가 부드럽게 구워진다.

  서양에서도 기름기가 많은 조류를 구울 때 이 방법을 쓰는데 정조지에 보면 고기를 아주 연하게 굽는 방법이 나와 있다. '설하멱방(雪下覓方)'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고기 구이법이 나온다. 여기에는 몇가지 고기를 연하게 구울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다. 육식을 상식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기름기 없고 연한 부위를 선호했다. 소고기를 편으로 썰어 칼등으로 두드려 준다. 소고기의 근육 조직을 끊어 줌으로써 연하면서도 양념이 고르게 배는 역할을 한다

  대나무 꼬챙이에 꿰면 익었을 때 단백질의 응고로 조직이 수축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볼품없이 오그라 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이를 기름과 소금에 재워 두면 기름이 고기 표면에 얇은 막을 형성해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주고 소금이 천천히 스며 가운데 육즙이 용출되지 않게 하는 조절 작용도 한다

  화롯불에 구울 때 잠깐 물에 넣었다 빼기를 3번 반복하고 다시 기름을 발라 다시 구우면 연하고 맛있다고 했다. 이는 고기를 구울 때 휴지기를 준다는 의미로 물에 담그면 수분이 보충돼 얇은 고기의 뻣뻣함을 줄 일 수 있다. 고기를 구울때도 한번에 태우듯 굽지 않고 수분과 기름막을 적절히 활용해 연하면서도 고소한 고기 맛을 살려 구운 조리법이 놀랍다. 여기에 '설하멱방'이라는 조리법을 암시한 이름도 과학적이면서도 운치가 있다.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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