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규지(倪圭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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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규지(倪圭志)」는 생활경제, 즉 상업 백과서전으로, 5권 2책, 총 76,335자이며 『임원경제지』 전체에서 3.0%를 차지한다.

예규지

‘예규’는 ‘백규(白圭)의 상술을 곁눈질한다(倪)“는 뜻이다. 백규는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시세 차익을 이용해 재물을 모았다. 음식을 소박하게 먹고, 욕구를 절제하고, 의복을 아꼈으며 하인들과도 고락을 함께 했다. 풍석은 백규가 실행한 가계 경영과 경제관을 높이 산 것 같다. 당시의 유학자는 시세차를 이용해 이익을 남기는 상행위를 경계했다. 『맹자』에 농단(壟斷)이라는 언덕에 올라가 주변 시장을 둘러보고 시세를 조종하여 이익을 독점한 사람을 ‘천장부(賤丈夫)’라고 비판한다. ‘농단’이 유래한 고사다. 그런데 백규를 엿본다는 뜻의 제목을 달았으니 유자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풍석은 사마천(司馬遷)의 “가난을 유지하며 인의를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만하다”는 말을 인용하며 “식량과 재물을 구하는 방법은 본래 군자가 취하지 않는 일이면서도 군자가 버리지 않는 일이다”라고 못을 박는다. 군자는 도 닦는 일이 우선이지만 도만 닦을 처지가 못 되는 상황에서는 중용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사가 필요하면 장사를 하라. 이것이 풍석이 하고 싶은 말이다. 순임금이 여덟 가지 정사 가운데 먹을거리와 재물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했듯이 풍석 역시 처자식이 굶주리고 있는데 성리(性理)만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장사를 하지 않으면 사대부가 아니며 생계가 절박할 때는 몸을 움직여 먹을거리를 얻거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유학자이다 보니 농사가 근본이고 장사는 말단이라는 것. 그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장사에 필요한 지리적 지식을 정리해준다. 도시와 도시, 시장과 시장, 도시와 시장 사이의 거리를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풍석 자신이 장사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예규지」의 권1은 ‘지출의 조절’에 대한 내용이다. “수입을 고려하여 지출한다”, “절약”, “경계할 일”, “미리 준비하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제 생활의 핵심이 정리되었다. 절약과 검소가 책 전체에 스며있다. 이 틀 안에서 부자는 부유한대로, 빈자는 가난한 대로 적절하게, 인색함으로 흐르지 않도록 중도에 맞게 처신하라고 권하다. 원리를 설명하는 세부 지침이 자세하다. 특히 절약과 검소가 장수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이 훌륭한 웰빙 지침서이다. 밥과 옷을 마련하게 해 준 농부의 수고를 생각하며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고, 고기를 두 가지 이상 먹지 말고, 고기로만 배 채우지 말고, 오곡밥을 먹으라고 한다. 돈을 모으려면 낭비를 줄이는 데 힘써야 하는데 세금은 제대로 내고, 새어 나가는 재산을 막으라고 한다. 화재나 절도로 재산이 하루아침에 거덜나게 되니 재산이 많은 집은 평소 덕을 쌓아두라고 한다. 저당 잡히지 말고 임대로 살지 말고 놈팡이를 먹여주지 말라는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권2에서 ‘재산증식’ 방법으로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부동산 매매다. 그 다음은 유통업. 상인은 공정과 성실, 정직이라는 덕목을 가져야 한다. 재테크 방법으로 돈을 빌려 주었거든 고리대금을 피하고 과다한 금액을 빌려주지 말라고 한다. 소작인과 종을 대우하는 방법도 설명한다. 원망이 없게 처리하는 처세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권3은 ‘전국의 생산물’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시세차익뿐만 아니라 공간을 달리해 이익을 남기는 방법을 알려 준다. 권4는 ‘재산증식’의 세 번째 주제로 ‘전국의 시장’을 소개한다. 장날, 읍내에서 장터까지의 거리, 거래 물품 목록을 일일이 정리해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황해, 평안, 함경도의 311곳 주군(州郡)에서 개장되는 시장 1,046곳을 소개했다. 권5는 ‘전국 거리표’로 권 전체가 표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까지의 거리를 전국의 주요 간선과 지선을 연결하여 리(里)수로 표기했다. 서울이 시점이고 의주·서수라(경흥)·평해·부산·태백산·통영·강화 등 일곱 곳이 종점이다. 이를 통해 전국의 장시까지 가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다. 「예규지」 서문에 “재화를 증식하려는 자들이 기일에 맞춰 거래를 하고 여정을 계산하여 통행하기를 바라서이다”라는 문장이 있어 풍석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예규지」는 오사카본, 규장각본, 고려대본이 모두 있는데 오사카본만 권5가 없다. 인용문헌은 총 22종이다. 『금화경독기』를 가장 많이 인용했고 『인사통』, 『원씨세범』 등을 다음으로 자주 인용했다. 『열하일기』, 『북학의』, 『성호사설』 등도 1~2회 인용하였다. 경제의 전반적인 원론에서는 중국 문헌을 많이 활용했지만 조선에서 재화의 교역과 관리에 대한 실제 내용은 당연히 조선문헌을 인용했다. 권4와 5는 그가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서술되었는데 권5의 ‘전국 거리표’는 그의 말년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