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택지(相宅志)

임원경제지-1024x361

「상택지(相宅志)」는 풍수 백과사전으로 2권 1책, 총 41,451자의 분량이며 『임원경제지』 전체에서 1.6%를 차지한다.

상택지

‘상택’은 살 곳(宅)을 살핀다(相)는 뜻이다. 이 ‘상’은 술수가들이 말하는 향배(앞과 뒤)와 순역(순리와 역리)의 형국을 판단한다거나 오행과 육기(六氣)의 운행을 살핀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자라면 술수를 멀리하고 환경의 한난(寒暖), 좋은 물의 유무 정도만 살피라고 한다. 풍수란 인간의 선택이 상식적인 감각에서 시작해야한다는 것.

권1은 ‘집터 살피기’와 ‘집 가꾸기’, 두 가지를 다룬다. ‘집터 살피기’에서는 지리적 조건, 생업 조건, 인심, 산수를 살펴 살 곳을 고르고 지리적 조건, 물과 흙, 생업 조건, 좋은 마을 찾기, 경치 좋은 곳, 피해야 할 곳에 대해 안다면 좋은 집터를 고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듯하다. 산이나 가옥, 들판이나 나무, 시내에도 좋고 나쁨이 있고 텃밭, 논밭, 시냇물, 산봉우리, 민가가 주변에 있어야 하며 산·물·바람·습도·방향 등의 자연 조건을 지혜롭게 살피라고 한다. “사람은 양기를 받아 살아가므로 하늘과 해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절대 살면 안 된다”는 그의 조언은 복잡한 현대의 공간구조 안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가장 기피해야 할 곳은 사방의 산이 높아 주위를 압도하는 곳이다. 해는 늦게 떠서 일찍 지고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신령한 햇빛이 적으니 음기가 쉽게 올라온다”는 그의 설명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고층빌딩의 숲에서 살아가는 요즈음의 직장인들은 일부러 이런 산골을 찾아 전원주택을 짓기도 한다. 읽다보면 시대에 따라 달라진 주거지에 대한 선호도를 풍석의 「상택지」를 참고해 비교하고 싶어진다. 또 팔도의 유명한 약수터를 소개하고 풍토병인 장기(瘴氣)가 있는 지역을 알려준다. 농사와 장사, 이 두 가지 생업조건을 고려하여 주거지를 찾아야 하고, 인심 좋은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을 찾는 방법이 있으며 별장을 지을 때도 생업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팔도의 풍속에 대해 논하고 대장간, 종교 시설, 황폐한 곳, 논, 전쟁터를 피하라고 권한다. ‘집 가꾸기’에서는 황무지 개간, 나무 심기, 건물 짓기와 배치, 우물, 못, 도랑을 다루는데 「이운지」나 「섬용지」에서 언급한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과 상호 참조해 읽으면 참고가 된다.

권2는 ‘전국의 명당’을 다룬다. 조선 팔도의 산하를 산 · 내 · 강 · 바다로 연결 지어 주요 읍들을 개괄하고, 입지 조건, 경제 환경, 교통 환경, 지역적 특성, 배출 인물, 주거 가능성 여부를 알려준다. 각 도별로 특성이 비교적 두드러져 당대에 인식되고 있는 해당 도에 대한 인식을 엿볼 귀한 자료이다. 이 부분은 이중환의 『택리지』를 인용해 설명한다. 경기도와 충청도에 명당이 많다고 하는데 이는 실제로 명당이라기보다는 벼슬살이하는 사대부가 발탁이 되었을 때 곧장 관직을 맡을 수 있는 여건이 가장 좋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부분의 서술을 통해 18~19세기부터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명당 소개에는 성해응의 『명오지名塢志』와 풍석 자신의 『금화경독기』를 인용한다. 풍석은 강 · 계곡 · 산골 · 호수 · 바다 근처의 거주지 가운데 좋은 곳들을 따로 품평을 하는데 명산은 유람지일 뿐 영구히 살 곳은 아니라 하고 바다 근처는 질병과 뱀 등을 들어 명당으로 부적절하다고 한다. 더구나 서해나 남해는 왜국와 중국 어선을 거론하면서 이들이 닿지 않는 대부도와 강화도가 섬으로는 으뜸이라고 한다. ‘전국의 명당’ 부분을 설명한 풍석을 통해 19세기 조선의 산하와 물산의 유통, 그리고 인심을 오롯이 알게 된다.

20세기 들어와 변형된 대한민국의 산하는 「상택지」의 산하가 아니다. 아이러니 한 일은 군사분계선 안에 갇힌 풍석의 고향 파주 장단만은 온전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비록 접근할 수 없지만 풍석과 서명응, 서호수 등의 묘역이 그대로 남아 오늘 우리에게 풍석의 역사성을 긴장감 있게 전하고 있다. 「상택지」는 오사카본, 규장각본, 고려대본에 전 권이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오사카본의 내용은 나머지 두 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오사카본은 그 판심에 모두 ‘자연경실장’이 적혀 있고 그 내용이 그대로 다른 본에 필사되어 있으며 완전하게 정리 되어 있어서 최종본을 편집한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풍석이 「상택지」에 인용한 문헌은 39종이다. 『명오지』, 『금화경독기』, 『필역가거지』, 『거가필용』, 『증보산림경제』 등은 40회 이상 인용했고 『금화지비집』, 『위사』, 『산림경제』, 『한정록』 등은 1회만 인용했다. 조선의 산하를 다루었기에 중국문헌을 많이 활용하지 않았고 문집에 수록된 기행문 형식의 글을 자주 인용했다는 점이 이 지의 특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