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지(仁濟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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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지(仁濟志)」는 의학 백과사전으로 28권 14책, 총 1,111,604자이다. 『임원경제지』에서 가장 많은 44%의 분량을 차지한다.

‘인제仁濟’는 『논어』에 나오는 ‘백성에게 혜택을 널리 베풀고 어려움을 구제하는 일’을 의미한다. 풍석은 <인제지 서문>에서 점치는 자, 무당, 주술사, 음양오행가 등의 술수를 모두 인제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다. 사기이거나 의도가 좋다 할지라도 허공을 잡는 일일 뿐이라며 배척한다. 유가儒家답게 오직 의약만이 인제를 담당한다고 주장하는데 의학계의 옥석은 가리자고 당부한다.

「인제지」는 『동의보감』보다 더 많은 분량이며 「보양지」와 함께 양생과 예방, 치료의 두 부분에 관해 당대의 의학을 집대성했음에도 『임원경제지』 속에 묻혀 있다 보니 아직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인제지」는 <내인>, <외인>, <내외겸인>, <부과婦科>, <유과 幼科>, <외과>, <비급備急>, <부여附餘> 등으로 구성된다.

<내인>은 권1~3에 걸쳐 “음식·술·과로에 몸이 상함”, “몸의 정기와 기혈이 허손해진 증상”, “간질”, “잠이 적은 증상”, “벙어리”, “담음痰飮”, “여러 가지 기병(諸氣)”, 등등 피와 기침, 세균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을 포함한다.

<외인>은 권4~6에 걸쳐 있고 “중풍”, “상한傷寒”, “산람장기山嵐瘴氣와 습병”, “피부가 마르고 깔깔해지는 증상”, “화열火熱”, “학질” “다릿병”, “온역”, “헛것에 들린 증상” 등등을 포함한다.

<내외겸인>은 권7~11에 걸쳐 있는데 “두통”, “눈병”, “귀먹음”, “코막힘”, “치아의 통증”, “목덜미와 등의 통증”, “허리와 다리의 통증”, “갑자기 토하거나 설사하는 증상”, “트림”, “설사”, “변비”, “기침”, “부종”, “당뇨” 등등을 다룬다.

권12는 <부과>, 권13~15는 <유과>를, 권16~21은 외과 질병을 논하고 권22·23은 구급의학을 다룬다. 그 다음은 모두 부록에 해당한다. 권24·25는 “약 만들기”와 침구법, 의료기구를 논하고 있다. 권27은 본문 처방 색인에 해당하는 “탕액 이름을 운으로 찾기(湯液韻彙)”를 실었고 마지막 권28은 “구황救荒” 편이다.

질병의 각론에서는 질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 사후 조리의 형식으로 설명함으로써 실제 질병을 치료할 때 신속하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의보감』이 병리보다 생리를 근본으로 내세워 내경, 외형, 잡병 편제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인제지」의 내인, 외인, 내외겸인 구성은 좀 더 실용적이면서 파격적이다. “궁벽한 시골에서 책이 부족하니 『삼인방』의 목차를 따라 찾아보기 쉽고 질병 치료에 적용하기 유리하도록 구성했다”고 서문에 밝힌다. 또 「인제지」가 『본초강목』의 보완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구절도 있다. 분량이 많아 각 권마다 실린 내용을 이 지면에 모두 요약하기는 어렵다.

다만 ‘탕액운휘’ 부분은 일종의 색인인데 「인제지」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 가운데 하나라 부연한다. 지금의 사전에 해당하는 운서韻書의 순서대로 4,799가지의 처방을 색인 처리해 놓았다. 탕湯, 산散, 단丹, 환丸, 전煎, 원元, 음飮, 고膏 등의 처방 제형에 따라 따로 분류해 두었고 또 같은 이름의 처방이 질병 항목에 따라 달리 나오는 경우 일일이 그 해당 편명을 표기해 두었다. 이름이 같아도 내용이 다르면 별개의 독립 처방으로 보고, 각각의 질병 편명을 일일이 들어 전체 용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오로지 기억과 수작업에 의존해서 이런 성과를 이룬 점을 상기해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일본인 미키 사카에三木榮가 그의 『조선의서지朝鮮醫書誌』에서 “홀로 이루어낸 그 노작에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는 표현을 남겼는데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구황” 분야에는 어려운 시기를 미리 대비하는 방법에 대한 역사적 고찰로서 ‘미리 대비하는 일에 대한 총론’, 제도의 장단점을 따져보는 ‘구휼 시에는 일정한 값으로 빌려주고 돌려 받는다’, 기아를 견딜 수 있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서 ‘벽곡에 대한 총론’, 그리고 ‘기근의 구제에 대한 총론’으로 내용이 채워져 있다. 실로 의료와 삶이라는 인간 생활의 전반이 모두 망라된 대단원이라 할 수 있다.

「인제지」는 권수와 대제목, 소제목 모든 항목에서 다른 지에 앞선다. 분량이 많고 인용문헌도 878개나 되며 기사의 수만 해도 25,753개에 이른다. 『임원경제지』의 전체 인용문헌으로 수록된 852종보다 더 많은 문헌을 인용했다. 의약과 관련된 무수히 많은 문헌을 인용하면서도 “채취하는 시기”를 정리할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동식물 약재와 식재에 관해 집중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풀어 보인다. 「인제지」 전체에서 서유구 저술 이외의 조선문헌은 2.9%, 서유구 자신의 저술은 8.1%를 차지해서 11.7%가 조선문헌이지만 중국 문헌을 인용해 조선 문헌이 만들어진 경우가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인제지」는 고려대본과 규장각본이 남아 있다. 오사카본에는 없다. 인용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고려대본과 규장각본 가운데 고려대본의 정확도가 압도적이었다. 두 판본의 글자가 다른 경우 원출전과 비교해보면 거의 995 고려대본이 맞았다. 고려대본이 필사본 가운데 가장 선본善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풍석은 『동의보감』 기록으로 「인제지」의 본기사를 보강하거나 부연하고, 『동의보감』에 기록이 없으면 새로 추가하고 『동의보감』의 기록에 잘못이 있으면 교정했다. 그리고 「인제지」의 단방 처방은 『동의보감』의 처방에 『본초강목』의 처방을 추가한 경우가 많다. 비록 「인제지」에 실린 정보가 엄격하게 과학적인 설명을 담지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나 오랜 임상 관찰을 거쳐 얻어진 정보이며 동아시아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정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기에 천연물 신약 개발에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