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지(展功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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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지(展功志)」는 의류 백과사전으로 5권 2책, 총 58,462자이며 전체 분량에서 2.3%를 차지한다.

전공지

‘전공’은 ‘부공婦功을 펼친다’는 의미로 길쌈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주로 여성에게 부과된 노동이어서 부공으로 칭하는데 누에와 모시, 목화를 재료로 천을 만들고 염색을 거쳐 옷을 만들기까지의 섬세한 공정을 정리한다. 당시 사대부가의 부인들이 길쌈과 요리를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이덕무는 자신의 책, 『사소절 士小節』에서 비판한다. 풍석 역시 「전공지」를 지어 길쌈의 방도를 실천하도록 방법을 서술한 후 그림으로 공정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공지」에서 서술하는 길쌈과 양잠은 모두 중국의 기술이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 저열하다고 보고 중국의 제도와 방법을 본받기를 요구한다. 누에치기 뿐만 아니라 목면조차 뒤떨어진 전통만을 고수하는 조선의 현실을 비판한다. 당시 조선인의 의복 수요는 풍석이 보기에 목면을 으뜸으로, 삼베와 모시는 그 다음이며 누에가 마지막이었는데 어느 것도 수요를 채우기 어려울 만큼 생산량이 부족했다고 한다. 「전공지」를 통해 이런 열악한 조선의 상황을 개선할 선진 기술을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공지」 권1은 <누에치기와 길쌈(상)>을 주제로 한 책이고 권2는 <누에치기와 길쌈(하)>, 권3은 <삼베류 길쌈>과 <면 길쌈>, 권4는 <그림으로 보는 누에치기와 뽕나무 재배>, 권5는 <그림으로 보는 길쌈>을 주제로 한 책이다. 권1에서는 누에치기의 기본이 되는 “뽕나무 재배”와 “꾸지뽕나무 재배”에 대하여 다룬다. 토양과 파종시기와 종자와 이식, 접붙이기, 관리법, 가지치기 등으로 항목을 나누어서 뽕무나와 뽕잎을 얻기 위한 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양잠의 근본이 뽕나무 농사이므로 「전공지」는 뽕나무에 대한 서술로 시작하는 셈이다. ‘부가사항’에서 뽕나무 껍질로 종이를 뜰 수 있음을 설명한 부분과 꾸지뽕나무잎을 누에에게 먹여 견사를 생산하면 중국 금과 비파의 현으로 좋다는 부분은 재현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권2에서는 ‘누에치기’에 관한 서술이 세세해서 거의 생물학의 실험관찰보고서를 연상시킬 만큼 깊이 있는 내용이라 농가에서 이 지시사항을 다 지켜가며 누에를 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조선의 비단 생산 기술이 뒤떨어진 데에는 상공업을 천시하는 풍조가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우리의 관습인데 『고려도경』에 중국상인에게 비단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나온 이래, 풍석의 시대에도 개선이나 발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풍석은 “염색” 조에서 염색을 옷감의 질을 결정하는 공정으로 소개한다. 전통염색 장인들은 「전공지」를 참고해 재현할 수 있겠다.

권3은 <삼베류 길쌈>과 <면 길쌈>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삼과 모시, 어저귀와 칡 등 목화 이외의 식물성 섬유 재배와 방직에 대해 다루는데 ‘길쌈하는 방법’을 소개하며 지리적 차이에 따른 품질의 격차에 대해서 언급한다. 남북 모두 베를 짤 줄 알지만 북이 더 낫다는 평가다. 면화에 대해 설명하는 항목에서는 중국의 품종은 여럿인데 우리나라는 문익점 이래로 단 한 종의 품종만이 전해졌는데 그 품종이 오래되다 보니 품질이 떨어졌으니 중국 품종을 들여오자는 주장을 편다. 더불어 중국 품종을 구할 수 없다면 대마도를 통해 일본 품종이라도 구해 재배하는 편이 우리나라 품종만 키우는 것 보다 낫다고 지적한다. 면화 재배법으로 감종법坎種法을 소개하는 점이 이채롭다. 구덩이를 파서 목화를 재배하고 그 구덩이를 하나씩 늘려 가면서 개간을 하게 되는 방식이다. 풍석은 심지어 옷감별, 오염의 종류별로 빨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권4에서는 <그림으로 보는 누에치기와 뽕나무 재배>, 그리고 모시 재배 내용을 수록하여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중국의 발달된 제도를 쉽게 본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권5에서는 <그림으로 보는 길쌈>을 수록하여, 중국의 발달된 기계들을 본받아 태고 시절의 제도를 인습하고 있는 조선의 제도를 변혁시키고자 했다. 박지원도 조선과는 달리 기계의 힘을 빌려 고치를 켜는 중국의 소차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당시는 여러 학자가 중국의 기술을 본 받아 조선의 방직기술을 개선하자고 주장하던 시대였다.

「전공지」는 오사카본, 고려대본, 규장각본, 연세대본인 총 4종의 필사본이 현존한다. 오사카본은 자연경실장 원고에 필사했다. 권4와 권5는 목차에도 없고 별다른 편집지시도 없는 것으로 보아 오사카본 성립 이후에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오사카본의 권1과 권3에는 찬자와 교정자가 먹으로 이름이 지워진 반면 권2에는 1책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던 덕분에 서유구와 아들인 우보의 이름이 분명히 남아있다. 초고본인 오사카본에는 서유구의 편집 지시가 남아 있어서, 고려대본이나 규장각본으로 정리된 과정을 일부 보여준다. 오사카본을 그대로 정리한 연세대본과는 달리 고려대본이나 규장각본 권2의 <염색>부분에는 초고본에 없던 내용이 대거 유입됐다. 권3의 <빨래하는 여러 방법>에서도 그러하다. 오사카본과 연세대본에서 동일하게 권2의 ‘야생누에 기르는 법’이 누락된 것도 두 본의 친연성을 드러낸다. 고려대본은 권4와 5가 없고 규장각본은 권4와 5가 있지만 권4의 말미 부분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어 아쉽다. 「전공지」는 75종의 문헌을 인용했고 이 가운데 조선 문헌은 16.5%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