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지(晩學志)

임원경제지-1024x361

「만학지(晩學志)」는 과실 · 나무 농사 백과사전으로 5권 2책, 총 67,906자로 『임원경제지』전체에서 2.7%를 차지한다.

만학지

‘만학晩學’은 ‘늦게 배우다’라는 뜻이다. 과실이나 나무 농사의 정보를 모아 놓은 책에 그가 ‘만학’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나무 농사는 늦게 배워도 된다는 뜻인지, 아니면 자신이 늦게 관심을 가졌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다만 서울 번계에 살며 지은 ‘종수가種樹歌’라는 시에 나이 들어 산촌에 살면서 나무 재배가 가장 좋은 방도임을 알았다는 대목이 있고, 시를 지을 당시 이미 「만학지」의 상당량을 집필해 놓았기 때문에, 늘그막에 귀농하여 전원주택을 짓고 여생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배움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나무 재배에 관한 내용은 「이운지」, 「상택지」에서도 다루고 있다. 나무가 많으면 부유함이 제후의 그것과 비견할 만하여 백성의 풍속이 아름다워진다며 나무를 심을 것을 역설한다. 또한 나무 재배는 농정의 한 부분이라 중국 농서에서도 신중히 다루었으며 근본에 힘쓰는 일이라 했다. 그러나 조선으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농사 전반에 대해 서투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 사람은 나무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명물학名物學’적 차원에서 이름을 알아야 쓰임새를 궁구할 수 있다며, 한 사물이나 자연물을 가리키는 표준 지시어를 보급하고자 했다. 특정 사물이나 자연물에 대한 명칭이 성립된 뒤에야 비로소 그 재배법, 보관법, 치료법 등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풍석은 ‘실질에 힘쓰는 사람’, 즉 ‘무실지가務實之家’가 진정으로 힘써야 할 곳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했다. 그가 했던 이 방대하고 지루한 작업도 이 무실지가를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만학지」권1은 <총서>이고 권2는 <과일류>, 권3은 <풀열매류>, 권4는 <나무류>, 권5는 <기타 초목류>를 다룬다. 권1에서는 “씨 뿌리고 심기”, “접붙이기”, “거름주기”, “손질하기”, “보호하고 기르기”, “거두기” 등 나무와 과일을 얻기 위해 필요한 전 과정을 소개한다.

권2에서는 자두·매실·배 등 과일류 37종을 소개했다. 각론의 내용은 ‘이름과 품종’, ‘파종 시기’, ‘알맞은 토양’, ‘종자 고르기’, ‘파종과 가꾸기’ 등등을 다루었다. 특히 ‘이름과 품종’이라는 표제어는 모든 나무에 빠지지 않는데, 이를 앞세워서 특정 단어가 특정 나무를 지시하는 것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권3에서는 참외 · 수박 · 복분자 등 풀열매류 14종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최고의 품종이라는 경기도 광주산 수박의 재배법에 대해 매우 자세히 설명한다. 고구마에 대한 풍석의 애착은 지대하다. 1765년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고 소개하며 재배법이 널리 소개되기 전이라 구황작물로 맞춤하다고 보고 『종저보』를 지었고 그 책을 다시 이 「만학지」에서 재인용한다. 부록 기사에서 감자와 땅콩에 관한 정보도 소개하는데 그에 의하면 감자는 19세기 초반에 함경도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권4에서는 소나무 · 측백나무 · 옻나무 · 닥나무 · 오가피나무 등 나무류 25종을 다룬다. 이 권의 표제어 내용은 권3과 비슷하나 표제어 수가 적고, 표제어가 이끌고 있는 기사의 양도 몇 개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적다.

권5는 차 · 대나무 · 잇꽃 · 부들 · 담배 등 기타 초목류 13종을 소개한다. 이 가운데 ‘차’와 ‘대나무’가 ‘고구마’ 다음으로 분량이 많다. 이 두 종의 가공품을 향유한 층이 사대부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주로 사대부임이 틀림없다. 차를 수입하는 유행이 번지자 직접 재배법과 가공법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대나무 품종을 소개한 이유 역시, 조선에서 대나무 종류가 많지 않아 호사가들이 종자를 구입해 번식시키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외에 염료로 주로 이용되는 잇꽃 · 쪽 · 요람 · 지치와 자리 만드는 재료인 부들 · 갈대 · 왕골 · 골풀 · 매자기, 그리고 담배를 소개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경제성이 높은 상업 작물이다. ‘담배’조를 보면 ‘이름과 품종’, ‘파종시기’, ‘파종과 가꾸기’, ‘치료하기’, ‘거두기’, ‘종자 거두기’, ‘제조’ 등의 목차를 두어 상세히 서술한다. 책을 통해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안배했다.

오사카본 「만학지」는 편집 지시사항이 비교적 많은 불완전한 초고이다. 오사카본은 ‘자연경실장’ 괘지를 쓰지 않아 편찬 시기가 ‘자연경실장’ 괘지를 쓴 것보다 앞서는 것으로 보인다. 오사카본에는 편집 과정에서 수정을 많이 했던 앞의 「관휴지」보다도 편집을 지시한 곳이 40곳 가까이나 더 많다. 이 가운데 특정 부분에 내용을 끼워 넣으라는 ‘삽입’ 지시가 31.7%(61)로 가장 많았고, 내용을 바꾸라는 ‘교체’ 지시가 29.1%(56)개, 내용을 지우라는 ‘삭제’ 지시가 20.8%(40개)를 차지했다. 이 세 지시사항이 전체 편집 지시 가운데 총 81.8%에 달했다. 수정사항이 많은 데 비해 “고구마”조 만은 수정 사항이 두 곳밖에 없는 것으로 보아 『종저보』가 완성된 상태에서 「만학지」에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128종의 문헌을 인용해 「만학지」를 편집했는데 조선 문헌이 전체 분량의 26.4%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중국 문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