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지(藝畹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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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지(藝畹志)」는 화훼 농사 백과사전으로 5권 2책, 총 67,372자로 『임원경제지』전체에서 2.7%를 차지한다.

예원지

‘예원’은 ‘(화초를) 원畹에 가꾼다[藝]’는 뜻이다. 굴원이 시,「이소」에서 “내 이미 9원(九畹)에는 난초 기르누나! 또 100묘(百묘)에는 혜초 심지”라고 한 구절에서 따왔노라고 풍석이 밝혔다. 이 때의 화초는 「본리지」와 「관휴지」에서 다루지 않은 관상용 꽃과 풀이 대부분이다. 즉 먹지는 못하고 보기만 하는 식물 백과사전이 되겠다. 평범한 사대부들이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인데 화훼를 키우라는 풍석의 주장에 대해 호사스런 취미로 여겨 폄하하거나 완물상지玩物喪志 된다며 경계할까 저어되었는지 「예원지」를 저술한 자신의 의도에 대해 <서문>에서 부연 설명한다. 즉, 사람에게는 오관五官이 있고 곡식·채소·고기 등은 오관 중 입만 길러주는 음식들인데 사람은 짐승과 달라 입과 배를 기르는 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완상거리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 그는 “사물을 기르는 데 ‘허’가 있고나서, ‘실’을 기를 수 있어야 온전하게” 된다며 “허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실을 기르는 근원”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강희안의 『청천양화록』을 인용하며 완물상지라는 경계론을 격물치지라는 유학의 핵심 틀로 되받아친다. 화훼 기르기와 감상 역시 인간의 심성을 도야하는 데 필요한 정서적 자영분이라는 그의 생각은 예술의 기능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듯하다. “만약 우리 사람에게 보탬이 될 만한 것들을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오관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을 찾은 뒤에라야 좋을 터이다”라는 서문에서 그가 균형감각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예원지」는 모두 5권이다.

권1은 <총서>이고, 권2·3은 <꽃류>, 권4는 <훼류>, 권5는 <꽃 이름 고찰>이다. 순서대로 파종법과 옮겨 심는 법, 접붙이는 법, 물 주고 북 주는 법, 꽃나무를 손질하거나 특정 모양으로 만드는 법, 보호하는 법, 화훼나 화분의 배치법, 화훼류에 대한 다양한 품평, 절기 맞추기, 개화 시기를 앞당기는 법, 꽃 색 바꾸는 법, 보관하는 법 등을 다룬다. 채소와 약초 농사를 소개한 「관휴지」, 나무나 넝쿨열매를 다루는 「만학지」와 총론에서 서로 겹칠 법하지만 그렇지 않다. 화훼류에만 적용되는 노하우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여기서 살필 수 있다.

50종의 꽃류를 다른 권2·3 가운데 권2에서 모란 · 해당화 · 매화 · 백일홍 · 무궁화 등 나무에 꽃이 피는 목본류 총 22종이 소개되고, 권3에서 난화 · 국화 · 함박꽃 · 수선화 · 양귀비 · 패랭이꽃 등의 초본류 28종이 소개된다.

권4에서는 15종의 훼卉류를 소개한다. 여기에는 석창포 · 파초 · 만년송 · 종죽 · 종려 등 주로 꽃보다는 잎과 줄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초목들이 들어 있다.

“방 남쪽 작은 언덕에 파초 네댓 그루를 새로 심었는데, 어느새 십여 척으로 자라 저물녘 그늘이 창을 덮어 안석과 평상, 서책과 책갑이 이 때문에 맑고 푸르러 좋아할 만했다. 이 때 매우 무더웠는데, 나는 폐병으로 앓아누워 땀이 줄줄 흘렀으며 정신이 몽롱하고 기운이 빠져 잠이 든 듯한 때가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섬돌 사이에서 또로록 또로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청량한 기운이 얼굴을 때리는 것이었다. 일어나 보니 뭉게구름이 빽빽이 펼쳐지고 빗방울이 갑자기 파초 잎을 치고 있었다. 무성한 잎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구슬처럼 흩어져 떨어지니, 내가 귀 기울여 오랫동안 듣자 정신이 상쾌하고 기운이 맑아져 병세가 호전되었음을 알았다.”와 같은 그의 문장을 보면, 「예원지」의 서술 역시 단순히 문헌을 인용 정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심고 가꾸면서 얻은 생활 속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권5에서는 앞에서 다룬 50종의 꽃 가운데 색이 다양하면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따라서 품종의 분류가 매우 다양한 4종의 꽃 이름에 대한 연구서의 성격을 띤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품종에 대해서도 소개하는 대목을 보고서, ‘경화세족京華世族’들을 염두에 둔 서술이라며 백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입장도 있기는 하다. 다만 당시 화훼류에 대한 분류학 관련 서적이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향촌 생활 전체를 아우르기 위한 시도로 평가할 수도 있겠다. 풍석은 매화 · 석류 · 연 · 노송 · 종죽 등은 「만학지」에서 다루고 있어서 꽃과 관련된 정보만 수록하겠다고 하여, 다른 지와 중복을 피하는 동시에 교차 색인이 되도록 했다.

「예원지」는 현재 3종의 필사본이 존재한다. 오사카 본에 편집지시가 남아 있어 저술 과정을 알 수 있게 한다. 「관휴지」에 비하면 편집 내용이 적고, 그 대부분도 한두 글자를 삽입하라는 지시이다. 권5는 교정이 한 군데밖에 없어 초기에 완정본이 성립된 것 같다. 오사카본은 ‘자연경실장’ 원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오사카본의 편집 지시에 없는 대목이 전사본에 나타나, 오사카본이 고려대 본의 직접적인 모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원지」는 총 95종의 문헌을 인용했다. 재인용한 서적이 많아, 실제로 참조한 책의 수는 더 적다. 많은 인용서들이 『광군방보廣群芳譜』에 수록되어 있어서, 풍석이 대부분의 정보를 이 책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책인 『화한삼재도회』도 24회 인용되었고, 화훼를 다룬 중국 문헌을 여럿 인용했다. 서명응의 『본사』나 풍석 자신의 『금화경독기』와 『행포지』를 재인용한 경우도 많다. 그는 인용 문헌을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밝히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치밀한 고증적 태도를 보인다. 더불어 중국과 일본의 화훼 재배법을 소개하면서도, 조선의 토양에 적용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는 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