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리지(本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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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리지(本利志)」는 곡식 농사 백과사전으로, 13권 6책, 총 151,254자로 전체 『임원경제지』안에서 6.0%를 차지한다. 농사에 관한 총론을 포함하여 주로 곡물 농사에 관한 지식들을 망라했다.

‘본리’란 봄에 밭 갈고(本) 가을에 수확한다(利)는 의미이다. 씨앗 하나가 수십 배로 불어나는 농사일을 가리킨다. 이때의 농사에는 채소나 과일, 나무나 화훼는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곡식을 키우는 일이 농사였는데 풍석은 「본리지」에서 곡물농사 외에도 농사의 범주에 들어갈 법하다고 생각하는 토지, 수리, 흙, 거름, 농시農時, 농사 철학 등의 모든 지식과 기술을 다루고 있다.

『임원경제지』는 「본리지」로 시작해 「예규지」로 마무리되는데 농사가 근본이고 장사가 말단이라는 풍석의 의도를 드러내는 편제다. 풍석의 다른 책인 『행포지杏蒲志』에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기록한 내용을 정리했다’는 대목이 있어 스스로 농사를 지었음을 알 수 있는데 조정의 핵심 관료 였던 그가 이처럼 농사관련 저술에 매달린 이유는 당시 중심 학문이었던 경학經學과 경세학經世學의 한계와 모순 때문이었다. 앞 사람의 해설을 분석하고 자기 견해를 보탠다 한들 이미 중언부언인 한계와 아무리 국가제도나 국정운영에 대해 연구한들 흙국(土羹)이고 종이떡(紙餠)에 불과하다는 모순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토갱지병 같은 노력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면서 유학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료 정리에 매달린 풍석의 노고가 「본리지」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의 삶에 곧바로 활용할 수 있고 국가의 운영에 실질적인 힘이 되는 학문이 농업임을 설파한다.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되는 것이 곡식이고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일이 농사라는 그의 선언이 「본리지」를 낳았다.

「본리지」권1은 <토지 제도>를 다룬다. “경묘법과 결부법”에서는 땅의 넓이를 재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세금 부과 방법을 변경하자고 제안한다. 더불어 확실한 주척周尺(약23.1센티미터)을 고증해 낸다. “토지의 종류”를 소개하고 부록으로 “양전법”을 실어서 농지 측량 때에 백성과 수령을 속이는 아전의 농간을 줄여보려 노력한다. 특히 이 부분의 수학 관련 자료는 풍석의 아버지 서호수의 『해동농서』에서 인용한다. 「유예지」에는 할아버지 서명응의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을 인용해 수학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는데 당시 중국과 서양의 수학이론을 담고 있어 오늘날 귀한 자료가 되어 준다.

「본리지」권2의 주제는 <수리水利>이다. 농지에 물대는 기술을 정리하는데 물길 준설법, 지세 측량법, 방죽 쌓는 법, 쌓은 둑을 잘 보존하는 법, 물을 모으고 피당을 만드는 법 등을 중국의 문헌을 인용해 자세히 설명했다. 조선의 수리법은 엉성하므로 중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 풍석의 생각이다.

권3에서는 흙을 분별하는 법과 농사의 때에 관해 다룬다. 다른 지역의 작물을 손질하면 풍토에 맞지 않아 잘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신토불이’나 ‘토종’ 중시 사고를 배격하는 그의 입장이 드러나 있다. 외래종이라도 우리 땅에서 잘 수확되면 그것이 새로운 토종이라고 주장한다. 농시農時는 24절기 72절후로 나누어 때마다 해야 할 농사일에 대해 설명한 후 고정관념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또 위도와 경도에 따라 농시가 달라져야 한다며 조선의 역법을 정리한다. “물후”항목은 이런 주장을 편 끝에 자연만물의 주기적인 변화현상을 살펴 농시를 감지하도록 ‘풀달력’을 설명하며 정리한 부분이다.

권4~6은 작물 농사의 실제 과정에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종자선택에서 밭갈이, 파종, 김매고 수확한 뒤 저장하기까지에 필요한 내용들이다. 권4에서 <농지 가꾸는 법>을 정리해 가족의 노동력을 고려해 ‘적당한’ 면적으로 농사를 지으라며 농사철학을 설파한다. 정신교육으로 제대로 된 농사꾼을 길러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권5와 6은 파종하고 가꾸기에서 수확, 방아 찧기, 저장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나머지 공정을 다뤘다. 파종에 쓰는 종자 가운데 벼와 보리에 가장 공을 들였고 보리와 조의 견종법에 대한 해설은 조선 농업사 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로 이용되기도 했다.

권7에는 모든 곡식의 품종과 명칭을 알려준다. 자신이 새로 도입한 품종도 소개되어 있다. 권8에는 농사의 다섯 가지 피해, 그 예방법, 뒤처리 방법에 대해 다룬다.

권9에서는 농가달력을 표로 제시하고 권10~13은 농사일에 쓰이는 농기구를 분류하고 그림으로 정리해 두었다.

「본리지」에는 농사의 전 과정이 들어 있다. 농사철학과 작물의 이름과 생태에 관한 세밀한 정보가 있고 생산량을 최대로 만들기 위한 농법이 있고 농업 정책이 있다. 선인들의 지혜의 총체를 모았다. 석유화학농법의 한계를 절감하고 유기농법이나 자연농법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온고지신, 법고창신의 보고가 될 수 있겠다. 중국의『왕씨농서』가 가장 많이 인용되었고 풍석 자신의 『행포지』도 자주 인용했으며 조선의 문헌은 23종이 인용되었다. 얼핏 「본리지」가 95종의 인용서를 편집한 자료집으로만 보이겠지만 풍석의 견해가 추가되어 있고 글자를 교체하는 등의 편집의 묘가 발휘되어 있어서 후속 연구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그가 기사를 배치한 방법이나 순서 자체를 연구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본리지」필사본은 총 4종이 확인된다. 고려대본, 국립도서관본, 규장각본, 서강대본이 그것이다. 아쉽게도 오사카본이 없다. 평양본에 「본리지」가 있는지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