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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풍석학술대회 - 김용옥 선생의 발표문을 듣고

작성자
온유한
작성일
2014-06-03 11:45
조회
2426
2014년 5월 9일 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풍석학술대회에서 좌장을 맡은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풍석 서유구가 산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칸트는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인간 이성의 권위를 입증하고, 또 그 힘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어떠한 외재적 권위에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율권의 숭고함을 확립”하였다며 글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를 통하여 근대적 인간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였고, 인간 안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정신이 사적이고 주관적인 개체의식에서 점차 공적이고 객관적인 보편정신으로 깨어나가는 과정을 밝혔다.”라고 연결합니다.

칸트와 헤겔을 설명한 뒤 “헤겔의 변증법적 결구 속에서 맑스가 태어났고 니체가 태어났고 라캉이 태어났다“며 ”서유구가 산 시대야말로 인류사의 과정에 있어서 가장 압축적인 “메타노이아”(사고의 회향)의 혁명이 진행된 시기였으며, 필연과 자유를 통합하는 새로운 문명의 장이 펼쳐진 시기였다“고 당시의 서구 사회를 평가합니다.

이와 같은 설명 끝에 도올은 “과연 풍석이나 다산의 정신세계를 이러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동떨어진 은자隱者의 나라, 조선왕국의 로칼한 사태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진정한 세계사는 보편사이어야 하며, 보편사라는 것은 각개 민족의 상대적 환경에 구애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자각의 정도에 따라 동질적으로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크로놀로지의 전후에 따라 포폄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풍석의 시대를 보편사의 관점으로 바라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백남운이 『조선봉건사회경제사』에서 논증했던 “우리 역사에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를 통하여 중세시대가 엄존해 있었다“는 주장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사학이 우리 역사에 씌워놓은 “정체성후진론”을 극복하는 보편사론적 주장이었으나 과연 조선왕조체제가 서구의 역사발전단계론에 말하는 봉건제인가?“라는 물음을 불러일으킨다며 ”인류사의 보편적 법칙은 ‘근대성’을 말하기 위해서 반드시 ‘중세’를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선행시켜야만 하는가? 역사는 반드시 근대를 향해서 가야만 하는가?“라고 되묻습니다.

도올이 보기에 역사학자들은 “‘근대’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오직 ‘자본주의’가 싹터야만 근대라는 규정성이 생긴다는 판에 박힌 도식을 되풀이할 뿐, 맑스를 비판하면서도 맑스의 도식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덧붙여 “백남운 스스로가 서구적 ‘봉건’의 개념과 조선역사 양식의 특수성의 불일치를 인식하면서 ‘고려봉건사회의 아시아적 특수양상’이니 ‘중앙집권적 관료봉건국가’니 하는 따위의 애매모호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모순되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또 ‘양반사회’를 서슴없이 ‘봉건사회’로 규정하고 있다”며 “그가 말하는 “보편사Universal History” 라는 것은 결국 서구중심적, 맑스역사관적 보편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보편사란 어디까지나 보편적 인간 Universal Man을 전제로 할 뿐이며, 문화적 · 지역단위적 특수성의 절대화의 독단을 전제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서양의 근대는 오히려 조선의 근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동방의 사유에는 애초부터 그러한 오성의 한계성도 없으려니와, 오성의 한계성을 뛰어넘는 자유의 궁극적 근거로서의 신의 존재 또한 부재“하고 ”유한과 무한이 서로 합생concrescence하는 복합계로서의 생명의 변계성만이 우주를 통합“하기에 ”역사는 어디로 진행 중인지 도무지 오리무중“이라고 주장합니다.

도올은 여기까지의 논의를 통해 ”서유구가 산 시대가 이른바 조선역사에 있어서 ‘근대의 맹아’라는 시기에 해당된다고 보는 시각을 불식“시키고 ”풍석 서유구나 다산 정약용을 모두 ‘실학자’로 보는 넌센스의 정체를 노출“시키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서유구라는 사상가는 반드시 그의 친조부인 보만재 保晩齋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웅대한 선천학 先天學의 체계와의 관련 속에서 논구되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보만재로부터 풍석에 이르는 사유의 집약과정이 칸트에서 헤겔에 이르는 사유의 전개과정의 밀도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과시하고 있다고 확언”합니다.

“풍석 서유구의 총 113권에 이르는 『임원경제지』라는 백과전서의 놀라운 스케일의 사유형태는 이미 보만재의 천문 · 지리 · 인사의 글로벌 스케일을 넘나드는 선천학의 다양한 관심과 포섭적 통일성 속에 배태”되어 있으며 “프랑스의 『백과전서』는 혁명시대의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던 계몽적 · 유물론적 시대정신을 위대한 기념비로서 역사에 새겨놓기 위한 위업이었고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근대정신을 집약”하였던데 비해 풍석의 『임원경제지』 속 인간은 “농사적 인간 Agricultural Man”에서 시작한다며 서구와 다른 풍석의 인간관을 설명합니다.

그 시대에 왜 보만재와 다산과 풍석이 그와 같은 저술에 매달렸는지에 대해서 답을 찾기 위해 학술대회를 연다고 마무리합니다.

40여년에걸쳐 113권의 <임원경제지>를 아들 우보와 함께 완성한 풍석.

그가 사명감을 느끼고 이런 거작을 완성한 이유가 무엇일까, 새삼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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