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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 거친 밥을 먹는 요령 - 서유구가 서유락에게

작성자
온유한
작성일
2014-06-17 08:38
조회
5388

가난한 날 거친 밥을 먹는 요령


 

박생朴生에게 듣자니 자네가 접때 이곳에서 돌아가서는 밥을 마주하고 젓가락을 세우고서 탄식하면서, 내가 먹던 거친 밥을 곰곰이 생각하고 밥상에 올려놓은 생선과 젓갈을 입에 넣어도 단 줄 몰랐다 하더구나. 아 자네는 잘못하였네. 어찌 그렇게 하였는가? 『원씨세범袁氏世範』(宋의 袁采가 편찬, 목친睦親, 처기處己, 치가治家 세 부분으로 되어 있음)을 보지 못하였던가? 그 말에 “하늘과 땅이 생육하는 도리가 사람에게 미치게 하는 바가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으니, 사람이 하늘과 땅에 보답할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였다네. 내가 매번 이 글을 읽고 눈이 놀라고 마음이 두렵지 않은 적이 없다네. 낯이 붉어지고 땀이 발꿈치까지 흘러내렸다네.

생각해보게나. 내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44번의 추위와 더위에 17,300여 일이 지났네. 그동안 겨울이면 솜옷을 입고 여름이면 갈옷을 입었으니, 그렇게 하지 못한 적이 없었거니와 또한 겹겹의 갖옷을 입고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적까지 있었지. 아침과 저녁에 밥을 꼬박꼬박 먹어 빠뜨린 적이 없었거니와 또한 산해진미를 한꺼번에 큰 상에 올려놓고 먹은 적까지 있었지. 조금씩 조금씩 쌓아 모아나갔다면 어찌 천만 냥인들 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나는 내 손으로 쟁기나 호미를 잡아본 적이 없었고 내 처자는 눈으로 길쌈하는 도구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네. 하지만 이러한 물건들이 다 어디에서 나온 것이겠는가?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매일 자네에게 모두 빌리기만 하고 여러 해가 되도록 1/10의 이자도 갚으려는 마음이 없다고 해보세. 화려한 의복과 맛난 음식을 갖추느라 보통 사람이 이삼 년 사용할 비용을 들여 한 끼 밥을 먹느라 탕진을 해버리고, 다시 끊임없이 빌리려고 한다면 자네는 이를 참을 수 있겠는가? 나는 조물주라는 이가 장차 문서를 들고서 하루아침에 나에게 부채를 책임지라고 할까 겁이 난다네. 그러면 저 드넓은 하늘과 땅 사이에 채대債臺에서 벗어나 내 몸을 둘 데가 다시는 없을 것일세.”

예전 문정공文正公(범중엄范仲淹)이 밤마다 침소로 들 때 그날 먹은 음식비용과 그날 무슨 일을 하였는지 몰래 셈을 하였다고 하네. 그날 한 일이 쓴 비용에 걸맞으면 배를 어루만지면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고, 걸맞지 못하면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고 하니, 반드시 걸맞을 것을 구하고자 한 것일세. 저 문정공은 덕망과 공업이 높은데도 오히려 변변찮은 반찬조차 이렇게 겁을 내었는데, 우리는 천지 사이에 저 버러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다면 한 톨의 곡식과 한 국자의 물도 오히려 과분할까 걱정하여야 하는데 음식이 거칠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또 사람이 태어나서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각기 양이 정해져 있어, 몸이 풍성하거나 야위었건 간에 분명 큰 차이는 없는 법이네. 인물 전기에 기록된 바를 살펴보면 평생 만 마리 양을 먹고도 죽은 이가 있고 5년간 연잎만 먹고도 불상을 만들어 세운 이가 있다네. 그 이야기가 허황하여 근거가 없기는 하지만, 또한 이러한 이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일세. 이 때문에 내가 일찍이 안자顔子는 도시락 하나에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달게 여기지 않았더라면 정히 서른까지도 살지 못하였을 것이라 생각하였지. 하증何曾이 하루에 만전萬錢을 써서 밥을 먹지 않았더라면, 이소군李少君과 장적교여長狄僑如처럼 장수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 내가 또 오늘의 거친 밥을 가지고서 허물을 속죄하고 빚을 탕감하여 그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자네는 이것을 근심으로 여기는가? 참으로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구나.

근일 한가할 때 황정견黃庭堅이 밥 먹을 때 보아야 할 다섯 가지 <식시오관食時五觀>을 오만하다 여겨 식결食訣 3장을 만들어 보았네. 매번 밥을 먹을 때 잡다한 여러 반찬을 내지 않고 먼저 담담하게 밥 세 숟가락 들되, 첫 숟가락에는 “고르고 깨끗하구나, 내 죽과 내 밥이. 수북하구나, 위대한 상제가 내린 복이라네”라고 외우고, 두 번째 숟가락에 “화전밭 일구기 어렵고, 무논 갈기 어렵네. 농사꾼은 어려운데 나는 밥을 먹는다네”라고 외우고, 세 번째 숟가락에 “달구나, 곡식의 단맛을 달게 여기세, 달고도 향긋하구나”라고 외운다. 이렇게 세 가지를 외우다보면 밥이 이미 반 사발밖에 남지 않는다. 마침내 목구멍이 열리고 위가 편안해진다. 비록 명아주와 콩잎과 같이 맛없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곰발바닥처럼 맛난 음식과 한 가지가 된다. 누가 우리 집을 넉넉하지 않다고 여기겠는가?

내가 늘그막에 기구하여 마치 고인이 이른바 황하가 9리를 두루 적셔준 것처럼 누군가 도와주기를 갈구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내가 가지고 있어 자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이 세 가지 비결밖에 없다네. 만약 안촉顔斶이 느지막이 밥을 먹고 조태정趙台鼎이 지혜롭게 밥을 먹은 것처럼 하며, 우리나라 이문성李文成처럼 물에 밥을 말아먹는 경륜을 펼친다면 모두 양생을 할 수 있는 소박한 법이 될 것이요, 가난하게 사는 좋은 방도가 될 것일세. 아울러 병풍 사이에 마구 써놓아서 밥상을 대할 때 큰 스승으로 삼아도 좋을 것일세.

내가 월초부터 양식이 끊어져 매일 이웃집에서 빌려서 먹고 있는데 이는 모두 새해 파종할 때 필요한 곡식이라네. 물건 하나를 들고 가서 전당을 잡혀 수십 냥을 빌려올 예정이지만 올해까지 견디지는 못할 것 같네. 그 본전과 이자를 다 갚아야 하겠지만 이 또한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더욱 마음에 걸리네. 하나하나 다 쓰지 않네.

- 서유구가 동생 서유락에게 쓴 편지

이종묵의『글로 세상을 호령하다』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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