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곽미경 소장 <중앙일보> 인터뷰

“가자미살 채운 연꽃받침 만두 맛보실래요?”

“선생의 말대로 연방(蓮房)의 밑을 잘라 스펀지 같은 속을 파내고, 그 속에 잘 다져서 간장 양념을 한 가자미 살을 채웠다. 그러고는 김이 폭폭 오르는 작은 시루에 쪄내어 뚜껑을 열어보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운무 속에 떠 있는 신선이 사는 동네를 본 것과 같으니(…)연방만두의 자태가 대단하였다.”

조선 실학자 서유구 레시피 복원 풍석음식연구소 곽미경 소장

『임원경제지』에 실린 요리 골라 최근 『조선셰프 서유구』 출간

여기서 선생은 『임원경제지』로 유명한 조선 영·정조 대의 실천적 지식인 풍석(楓石) 서유구(1764∼1845)다. 또 그의 레시피대로 ‘연방만두’라는 생소한 음식을 재현한 이는 풍석문화재단 곽미경(53) 음식연구소장이다. 곽 소장이 최근 펴낸 『조선셰프 서유구』(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한 대목이다. 연방은 연꽃 열매가 들어 있는 받침 부분. 다이어트·변비·불면증 등에 좋다고 한다. 여기에 고단백 생선살을 더해 영양학적으로 손색 없다는 설명이다.

책에는 이처럼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전통 레시피들이 가득하다. 무를 섞어 반죽해 소화불량의 주범으로 꼽히는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을 제압한 국수인 구면, 고추가 수입되기 전 매운 맛 재료였던 천초(초피나무 열매)에 찹쌀가루·간장을 섞어 만든 지짐이인 전천초까지 모두 50여 가지가 소개돼 있다. 전부 서유구가 집대성한 것들이다.

서유구는 조선 사대부의 관념적 성리학을 ‘흙으로 끓인 국, 종이로 만든 떡(토갱지병·土羹紙餠)’이라고 비판한 이였다. 먹고 사는데 도움 안 되는 공허한 학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가 표제어 1만8000개의 방대한 농경백과사전 『임원경제지』를 집필한 이유도 백성의 생활 개선을 위해서였다.

곽 소장은 “서유구 선생이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주(기득권층의 사회적 책임)를 실천한 분”이라고 했다. 농부의 수고를 헤아려 떨어진 밥알 하나도 버리지 않고 씻어 먹도록 하는 가풍에서 성장했다. 정조의 영을 받들어 규장각을 만든 할아버지 서명응이 관직에서 물러나자 직접 음식을 만들어 봉양했을 정도로 소탈했다.

곽 소장은 2년 전 서유구를 처음 접했다. 그 전까지는 음식 솜씨 좋고 손이 커 만든 음식 나누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대학 전공도 사학으로 요리와 관련이 없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서유구 세미나에서 그의 음식을 맛본 후 전체를 되살리고 싶던 차에 풍석문화재단 발족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난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해 7월 음식연구소가 문을 열 때 소장으로 취임한 이후 『임원경제지』 초벌번역을 바탕으로 밤잠을 줄이며 레시피 복원에 매달렸다. 차츰 이름이 알려져 현재 전북 14개 시·군의 향토 음식 개발사업을 맡고 있다.

『조선셰프…』에 소개한 레시피들은 『임원경제지』 중 음식분야 기록인 ‘정조지(鼎俎志)’에서 뽑은 것들이다. ‘정조지’에는 1200개 가량의 레시피가 들어 있다. 곽 소장은 “선생이 대부분 직접 요리해 본 것 같다”고 했다. “이거는 잘 되더라는 식의 요리 체험담이 정조지에 많이 나온다”고 했다. 곽 소장의 작업은 지난해 9월 발족한 풍석문화재단(이사장 신정수)의 사업 중 하나다. 재단은 『임원경제지』 완역 등을 목표로 결성됐다. 신경식 헌정회 회장, 서창훈 우석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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