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경제지 완역완간을 향하여

『임원경제지』와 풍석 서유구

1842년(헌종 8년) 어느 가을날, 일흔아홉의 한 노인이 서재에 앉아 백여 권의 책을 늘어놓고 한권 한권 쓰다듬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풍석 서유구 선생이셨습니다. 육조 판서에 관찰사까지 두루 역임한 그가 왜 탄식과 함께 이렇게 울고 계신 걸까요? 조선의 대표적 가문인 대구 서씨의 풍석 선생은 조부 서명응과 부친 서호수 2대에 걸친  실용주의 가학을 이어 아들 서우보와 함께 열정과 헌신으로 동양의 실용지학 전체를 집대성하여 마침내 『임원경제지』라는 제목의 거질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국운은 기울어 조정에서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이 없었고, 원고 집필을 같이 했던 아들도 일찍 죽어 나라와 백성을 부강하게 만들 이 『임원경제지』의 내용과 사상을 계승시킬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평생을 바쳐 숱한 이들이 남긴 실용 지식을 섭렵하여 조선 백성의 삶에 맞게 재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체험 속에서 한자한자 채워 낸 이 원고 묶음들을 보며, 이제 자신이 죽고 나면 그대로 사장되어 버릴 수 밖에 없게 된 현실에 풍석 선생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원경제지』 번역이 시작되다

풍석 선생이 서거하신 이후, 조선왕조가 망하고 36년 일제 식민지 시절을 지나 남북 분단에 이은 6.25전쟁이 한반도를 휩쓸어 잿더미가 되었고, 그 뒤 질풍노도와 같았던 경제성장기를 지났습니다. 그 와중에 풍석 선생의 눈물이 배인 『임원경제지』 원본은 소실되고 필사본 몇 종만 남은 채 160년이 넘도록 완역할 엄두가 나질 않은 채로 간간히 대단한 책이라는 풍문만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2003년 초, 대학원을 다니던 청년 고전학자 정명현을 필두로 『임원경제지』의 중요성을 절감한 소장 고전학자들이 『임원경제지』 완역에 뜻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강남의 한 어학원을 경영하는 송오현 원장이 풍석 선생의 오롯한 선비정신과 젊은 고전학자들의 푸른 뜻에 깊이 공명하여 선뜻 거금을 지원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3년이면 마무리될 줄 알았던 작업이 10년을 넘게 되었지만, 송원장과 뜻있는 이들은 『임원경제지』완역의 고된 열정을 믿고 계속 지원해 왔습니다. 국가에서도 『임원경제지』의 방대한 전통실용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3년부터 한국고전번역원을 통해 해마다 번역에 국고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30대 청년이던 고전번역자들은 『임원경제지』번역에 매달린 채 이제 40대 중후반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늘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작업하다 보니 건강이 다들 좋지 못하고 번역자 한분은 끝내 시력이 크게 악화되는 상태까지 이르렀지만 어떤 어려움도 『임원경제지』 완역을 향한 이들의 꿈을 꺾지 못했습니다.

『임원경제지』 완역완간을 향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40여명의 번역자들이 12년이 넘는 시간과 30억원 가까운 지원금을 들이고도 왜 아직도 『임원경제지』를 완간하지 못하고 있는지.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실력으로 어떻게 감히 『임원경제지』에 도전했느냐고 말입니다. 임원경제연구소 분들이 다른 많은 번역물처럼 『임원경제지』를 대충 마무리하려 했다면 벌써 완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풍석 서유구 선생의 투철한 저술 정신에 조금도 누를 끼칠 수 없었습니다. 고려대소장 필사본을 기본으로 하여 초역은 대부분 일찌감치 끝냈지만, 필사 과정의 오류와 원본 차이로 조금씩 내용이 다른 『임원경제지』 필사본들을 글자 하나하나 대조하고,『임원경제지』에 인용된 853종의 중국, 조선, 일본 서책들 원문과 대조하여 『임원경제지』의 정본을 만드는 교감 작업부터가 엄청난 일입니다. 정본이 완성되면 표점 작업을 하면서 초역을 다듬어야 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한 학문적 고증으로 보완해야 합니다. 쉽게 읽히도록 문면마다 각주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이제 풍석 서유구 선생의 『임원경제지』가 근 2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젊은 소장학자들의 열정에 의해 완역 완간의 목전에 이르렀습니다. 풍석문화재단은 서유구 선생의 간절한 염원과 임원경제연구소 소장학자들의 청춘과 꿈에 마지막 한 점을 보태고자 합니다.

앞으로 5년! 『임원경제지』 113권 모두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총 61권으로 『임원경제지』를 완역할 계획이 모두 섰습니다. 그에 따라 도표와 같이 간행될 것입니다.  

기한 출간 목록 권수
2016년 섬용지(2) 2권
2017년 섬용지(1), 유예지(3) 4권
2018년 상택지(1), 예규지(2), 이운지(4) 7권
2019년 정조지(4), 보양지(3) 7권
2020년 전어지(2), 향례지(2) 4권
2021년 전공지(2), 예원지(2) 4권
2022년 관휴지(2), 만학지(2) 4권
2023년 위선지(2), 본리지(4) 6권
2024년~2027년 인제지(27) 27권


『임원경제지』 완역완간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2005년 7월 출판된 『산수간에 집을 짓고-임원경제지에 담긴 옛사람의 집 짓는 법』(돌베개, 서유구 저, 안대회 역)라는 책은 한옥에 관심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임원경제지』중 ‘집’에 관한 기록만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역자인 안대회 교수는 “우리가 보유한 옛 문헌 가운데 건축과 조경에 관한 내용을 이렇게 전면적으로 풍부하게,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설명해놓은 저술은 『임원경제지』가 유일하며 독보적”이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임원경제지를 이렇게 평가하였습니다.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이렇게 방대한 분량으로 일상생활 전 부문을 상세하게 다룬 책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구체적 생활상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이 책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만큼 『임원경제지』에는 먹는 것(정조지, 보양지), 식재료 재배(본리지, 만학지, 관휴지), 건강관리와 의술(보양지, 인제지), 생활문화 (위선지, 이운지, 섬용지, 향례지 등) 등에서 우리가 보유한 옛 문헌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체계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보물과도 같은 우리 전통 실용 산물을 하루라도 빨리 드러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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