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석 서유구는 누구인가? – 위키백과를 통해

< 생애 >

서유구(徐有榘, 1764년 ~ 1845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농정가(農政家)이다.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서명응(徐命膺)의 손자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서호수의 아들로, 어머니는 김덕균(金德均)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문과에 급제, 1792년 대교(待敎)·검열을 역임. 1797년 《향례합편(鄕禮合編)》을 편집했다. 순조 때 의주 부윤·대사성·강화부 유수·형조·예조 판서·대사헌을 거쳐 1838년(헌종 4) 다시 대사헌, 이어 상호군·이조·병조 판서·우참찬·좌참찬·대제학을 역임했다.

실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백가서(百家書)에 통달하여 문명도 높았다. 1834년 호남 순찰사로 노령 남북을 돌아보던 중 기근을 겪고 있는 백성들의 궁핍을 목격하고 나서, 일본에 가는 통신사 편에 부탁하여 고구마 종자를 구입하여 각 고을에 나누어 주어 재배를 장려하고, 《종저보》 혹은 《경계책》 등 농정에 대한 경론 및 상소문을 써서 영농법(營農法)의 개혁을 누차 역설했다.

만년에는 전원에 묻혀 몸소 농사를 지으며 박세당의 《산림경제》를 토대로 《임원경제십육지》를 저술했다. 이 책은 농업을 주로 한 방대한 백과사전으로, 16부문으로 나뉘어 있고, 그 가운데는 농기(農器)의 도보(圖譜)와 전국의 시장 날짜까지 들어 있다.

< 주요 저서 >

•《임원경제지》 •《난호어목지(蘭湖魚牧志)》 •《누판고(鏤板考)》 •《행포지(杏浦志)》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유예지(遊藝志)》 •《종저보(種藷譜)》 •《향례합편(鄕禮合編)》 •《경계책(經界策)》

 

Seo_Yu-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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